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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의 항일 전쟁사중 3가지 비극

여각[旅觉]/해외여행

by BlackMonster 2021. 10. 2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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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항일 전쟁사는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손잡은 국•공합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1차 국공합작(1924-1927)이 제국주의자와 군벌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면 2차 국공합작(1937-1945)은 중국을 침략해온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성립된 사건이었다. 중국은 45년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까지 항일전쟁 도중 일어난 3가지 참사가 있는데  화위엔코우(花园口) 제방 폭파 사건, 챵샤(长沙) 원시따훠(文夕大火), 총칭 방공호 사건이 있다.

1) 화위엔코우 제방 폭발(花园口决堤)

일본군은 1938년 5월 하순~6월 초 쉬조우(徐州)를 점령한뒤 롱하이루(陇海路)를 따라 서진 하면서 정조우(郑州)를 빼앗아 우한으로 진격하려 했다. 일본군의 진군을 막기 위해 6월 9일 장지에스(蒋介石)는 정조우(郑州) 동북쪽 화위엔코우(花园口)의 황허(黄河)제방을 폭파하라고 명령했다. 제방을 폭파한것은 일본군의 진격을 늦춰 우한(武汉)을 지키기 위한 시간을 벌었으나 동시에 허난(河南),완베이(皖北),수베이(苏北)의 40여개 현(县)에 이르는 넓은 땅이 물에 침수 되었고, 주민들에게 많은 재난을 가져왔으며, 80여만명이 익사하였고, 수천만 명의 이재민이 속출하였고, 수년간 수해로 인해 흉작이 들었다. 하지만 일본군에게 미친 피해는 거의 없었으며, 중국의 민간인들에게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건으로 기록 되어 있다. 일본은 이사건을 계기로 우한을 점령하는 계획이 3개월 연기 됐다고 전해진다.


2) 챵샤 원시따훠(文夕大火문석대화)

중국 역사상 인간이 도시 전체에 일으킨 화제중 가장 큰 화제로 기록되고 있다. 일본군의 침공이 빨라지자 국민당 쟝지에스(蒋介石)는 챵샤(长沙)를 불태워 일본에게 점령당하더라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 계획은 곧 실현 되었다. 1938년 11월 13일 새벽 2시 외곽의 군병원에서 화재가 발생 하였고(현재 까지 군병원 화재는 신호인지 화재인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방화팀은 신호로 생각하고 새벽 2시 불을 지르기 시작 하였다. 이 불은 5일간 지속 되었고, 화재로 인해 3만명 이상이 사망 하였고, 도시의 건물이90% 이상 전소 하였으며, 10억위안(元)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고 춘추 전국시대 부터 시가 보호하던 문화재들 또한 소실되고 말았다. 이 화재로 인래 챵샤(长沙)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심하게 파괴된 도시(스탈린그라드, 히로시마,나가사키)중 하나에 포함되게 된다. 원시따훠(文夕大火)의 이름은 11월 12일 보낸 전보의 코드가 원(文문)이 었고 밤에 화재가 시작되어 시(夕저녁석) 큰불이었기애 다훠(大火) 원시따훠(文夕大火문석대화)라 불리고 있다.


3) 총칭 방공터널 사건

중일 전쟁중 일본이 1938년부터 1943년 까지 중국 총칭(重庆)에 가한 무자비한 폭격이 있었는데 당시 총칭에는 군수공장 및 군사 시설들이 밀접해 있어 일본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총칭 방공터널 사건은 이 시기에 발생하였는데 1941년 6월 5일 밤 9시경 일본군은 24대의 비행기를 출동 시켜 세차례에 걸쳐 총칭을 폭격 하였는데, 공습시간은 5시간 동안 이어졌다. 당시 시민들에게 제대로 공습 경보를 제공하지 못하였고 많은 시민들은 18차 방공터널로 몰려 들게 되었다. 4000명에서 5000명이 피할수 있는 터널은 1만여명이 몰려들었고, 시민들로 포화 상태가 된 방공 터널을 관리 요원들은 공습기간 동안 시민들이 터널을 드나들수 없게 걸어 잠궛고통풍이 되지 않아 고온과 산소부족으로 질식하거나 밀고 밀리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끔찍한 참사가 발생하였다. 이사건으로 2500여명이 사망 하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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